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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와 떠나는 산성길 역사여행-치열했던 접전지역을 보여주는, 삼국시대

이정선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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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접전지역을 보여주는, 삼국시대

 

온달산성에서 내려다본 단양 시내

치열했던 접전지역을 보여주는,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힘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발달한 산성은 우리나라 자연 지형에서 나온 독특한 군사시설로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왕성, 도성, 읍성 같은 평지의 성과는 형태와 기능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수도권을 보호했던 북한산성을 비롯해 백제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공산성과 부소산성 등을 걸으며 그 시간과 공간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삼국이 치열하게 다투었던 충청지역의 산성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떨까. 여기서의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나뉜 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즉 고려시대 전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한다.

북한산성
백제가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때 도성을 지키는 성으로 132년(개루왕 5) 축성되었다. 백제의 주군력이 이 성에서 고구려의 남진을 막았고 그 뒤 근초고왕의 북진정책에 따라 북벌군의 중심요새가 되었다. 1232년(고종 19)에 몽골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현종때에는 거란의 침입을 피해 북한산성으로 태조의 재궁을 옮긴 일도 있다. 이 때 성의 중축이, 1287년 우왕때 개축이 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자주 당하자 1711년(숙종 37)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공사를 시작해 석성 7620보(步)가 완성되었다. 성곽의 여장(성위에 낮게 쌓은 담)은 무너졌으나 대서문이 남아있으며 성체는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석가여래좌상, 진관사, 덕암사, 국녕사, 부왕사지, 북한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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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백제시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으로 충남 공주시에 금강을 내려다보며 자리하고 있다. 당시에는 웅진성으로 불리다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렸다. 475년(문주왕 1)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했다가 538년(성왕 16)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했다. 해발 110m인 공산 정상에서 서쪽 봉우리까지 에워싼 포곡식 산성으로 남녀노소 무리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금강변에 비추는 공산성의 야경이 유명하다.
진남루 앞의 넓은 터는 백제의 궁터이고, 공북루의 윗부분은 건물터로 추정된다. 또 이 부근에는 우물터 3개가 있다. 성내에는 후대에 세워진 영은사, 광복루 등이 남아있다.
볼거리&즐길거리: 무령왕릉(송산리 고분군), 국립공주박물관, 동학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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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자리한 백제의 마지막 왕성. 당시에는 사비성이라고 했다. 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정도 된다. 주변에 청산성과 청마산성 등의 보조성이 있고 남쪽에는 성흥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의 군수품 창고 터 등이 남아 있어 군사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월루가 있는 곳에서 산정을 두른 약 600m의 테뫼식 산성 안에는 영일루와 군창지 등이 있다. 탄화미가 발견되기도 하며 토축 성벽도 남아있어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538년(성왕 16) 웅진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때를 전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볼거리&즐길거리: 낙화암, 삼충사, 군창지, 부여 정림사지석불좌상, 영일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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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산성
전북 전주 남쪽에 자리한 고덕산과 천경대·만경대·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감싼 산성.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901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축성했다. 덕분에 견훤산성 이라고도 한다. 이를 1811년(순조 11) 성을 고쳐 쌓고 남고산성이라 했다. 당시 이 성은 전주의 남동쪽에서 남원·순창 행로인 2갈래 길을 좌우로 내려다보는 전략적 요충지로 화약과 군량미 비축은 물론 군졸이 상주했다고 전해진다.
볼거리&즐길거리: 천년 전주 마실길, 풍남문, 전주향교, 오목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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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산성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뒷산에 자리한 돌로 쌓은 산성. 우금바위와 개암사 저수지까지 능선 밑으로 산성을 쌓았는데 남쪽으로 통한 계곡 입구에 남문을 설치하고 양쪽 능선을 따라 동서로 뻗어있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하자 흑지상지와 복신 장군은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을 왕으로 추대해 백성들을 모아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흑지상지가 내분으로 당나라에 투항, 복신장군만 남아 김유신, 소정방에 맞서 싸우다 패한다. 전북 부안에 자리한 우금산성이 백제 부흥의 항거 거점으로 새겨진 이유다. 덕분에 개암사 대웅전을 안고 도는 우금산성은 백제문화 역사기행 코스로 찾는 이들이 많다.
볼거리&즐길거리: 전북 부안 마실길, 채석강, 곰소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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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꼽히는 금성산성은 전남 담양군과 전북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성산(603m)에 자리한다. 삼국시대에 처음 쌓았고 1409년(태종 9) 고쳤다고 전해진다. 1610년(광해군 2) 보수공사를 하면서 내성도 함께 만들었다. 1622년(광해군 14)에는 내성 안에 관청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 여장(성위의 작은 담)을 수리하면서 전반적으로 성의 면모를 갖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동서남북문의 터가 남아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덕유산, 관음사, 백련사, 반디공작소, 와인갤러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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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산성
고구려 평원왕(559~590)의 사위 온달장군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이름 붙어진 산성. 신라군 침입 때 온달장군이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충북 단양군에 자리한다. 남한강이 보이는 정상 부근에 돌로 쌓아올린 약 683m의 산성은 100m 정도가 붕괴된 것 말고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동남북 3문과 수구가 지금도 남아있다.
성안에서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우물터가 남아있다. 남서쪽 문터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이다. 온달굴 말고도 온달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성벽이 잘 보존되어 축성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볼거리&즐길거리: 천동동굴, 남한강, 구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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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산성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남서쪽에 자리한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또는 신문왕 때에 쌓았다고 하나 확실한 고증은 없다. 후삼국 혼란기에 양길과 궁예가 이곳에 거처하면서 인근 고을을 차지했다는 설도 있다.
둘레 4km, 높이 1~3m 정도의 석축이 남아있다. 외적이 침입할 때 원주와 이웃 고을 주민들이 이 곳에 들어와 마을을 지켰으며 치악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금대산성, 해미산성과 서로 교류해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치열한 접전의 흔적도 곳곳에 새겨져있다. 1291년(충렬왕 17) 향공진사로 별초군에 있던 원충갑은 이곳에서 원주의 백성들과 함께 원나라 적군을 물리쳐 이름을 날렸다.
볼거리&즐길거리: 치악산국립공원, 백운계곡, 금대계곡, 구룡사, 법천사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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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기성
2010년 폐왕성지가 거제 둔덕기성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고려 18대왕 의종이 폐위당해 거제도에 유배됐을 때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폐왕성지로 불려졌으나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신라시대에 처음 쌓은 것이라고 밝혀졌다. 사적에 지정되면서 2010년 거제 둔덕기성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다른 산성에 비해 정연하고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현문식 구조로 만들어진 점이 특이하다. 7세기 신라시대 성의 축조 수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지고 고려시대 수축된 성벽이 축성법 변화의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고 평가받고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해금강, 학동 흑진주몽돌해변, 동백섬 지심도, 거제 자연휴양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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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성
경남 창녕 동쪽 화왕산에 돌로 쌓은 산성.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 가야의 성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 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로 이 산성이 당시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화왕산성에 대한 조선 전기의 기록을 보면 ‘둘레가 1217보(步)이며 성내에는 샘이 9개 못이 3개 더불어 군창이 있었다’고 한다.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순식간에 대로를 따라 북상하자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곽재우의 의병 근거지이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1596년(선조 29)이나 전쟁이 끝날 무렵인 1598년에 비변사는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재인식하여 산성수축의 긴급함을 건의했다는 기록도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창녕 우포늪, 석빙고, 교동고분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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